사주 궁합 보는 방법, 속궁합 보는 방법, 궁합에 대한 이야기 정리

역학/사주|2019. 8. 15. 07:30


궁합은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가 모두 봅니다.

한국은 궁합, 중국은 합혼, 일본은 상성이라고 각각 부릅니다.


그런데, 궁합이란 것은 결론적으로 말해서 볼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런가를 이제부터 이야기 해 드리겠습니다.


궁합(宮合)이란 부부궁이 서로 합하느냐, 즉 서로 맞느냐를 따져보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궁합이란 것이 아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전이란 봉건시대를 말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남녀의 자유 교제가 허용되지 않던 시절, ‘남녀 칠세 부동석’이란 말이 문자 그대로 지켜지던 시절입니다. 


당시 남녀가 서로 얼굴을 볼 수 없었고 성춘향처럼 바람끼 다분한 처녀 정도가 되어야 단오날 그네 타는 핑계로 이 도령을 유혹할 수 있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히 궁합이 중요했습니다.


오 초시가 자신의 둘째 아들을 친구로 지내는 박 첨지네 맏딸과 결혼시키려고 마음먹었을 때, 신부측의 의향을 존중하는 의미로 사주 단자를 담은 함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형식이고, 이미 두 집안의 어른이 마음 먹기 전에 아내를 시켜 두 남녀의 사주를 보고 궁합을 보는 게 상례였습니다.




당시에는 아이의 사주, 즉 태어난 생년월일시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양반 계층이 아니면 어려웠습니다. 


산모의 곁에서 출산을 돕는 산파의 중요한 임무 중에 하나가 아이가 태어날 때 그 시각을 기록하는 것이었습니다.


흔히 산파는 재산깨나 있는 집안이 아니면 부르기 어려웠으니 상민들은 아이가 출생해도 새벽 닭이 울 때라든지 새참 먹고 난 뒤라든지, 겨울 저녁 밥 먹기 전에 태어났다는 식으로 기억하기 마련이었습니다. 지금도 40대 이상의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출생 시각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궁합을 본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두 사람간에 이끌림이 있느냐를 보는 것인데,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태어난 날의 오행으로 합을 이루느냐를 보는 방식입니다. 


어떤 총각의 태어난 날이 무자(戊子)이고 처녀는 계축(癸丑)이라면 아주 좋은 궁합이 됩니다. 천간의 무(戊)와 계(癸)가 합(合)을 이루고 지지의 자(子)와 축(丑)이 합을 이루니 찰떡궁합이 됩니다. 




이 때 천간의 글자간에만 합을 이뤄도 괜찮은 궁합이고 지지의 글자까지 합을 이루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궁합이 됩니다. 사실 이 방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궁합 보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궁합을 보지 않아도 오늘날 사귀고 있는 남녀들의 사주를 보면 저절로 그렇게 궁합이 맞는 사람들끼리 사귀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남녀가 사귈 수 있는 시대에는 따라서 궁합을 볼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그래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유난히 끌리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이럴 경우 두 사람의 사주를 보면 궁합이 맞는다고 단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궁합이 맞긴 하지만 어느 정도로 잘 맞느냐가 중요해집니다. 흔히들 인연이란 말을 쓰는데 과연 그 인연이 어디까지냐 하는 문제로 귀착됩니다. 


이를 두 사람의 사주로 판단하려면 앞서 말한 일간과 일지의 합을 보는 것은 물론 두 사람의 성격과 기호, 앞으로의 운명을 놓고 면밀히 살펴보아야 하는데요.




정작 당사자인 두 사람이 상당 기간 이미 잘 사귀고 있고 그 결과 결혼을 하기로 마음 먹게 된다면 고명한 사주 선생을 찾아가 물어볼 필요가 아예 없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이미 저들끼리 시간을 두고 사귀면서 결혼을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면 이미 궁합은 다 맞아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양가 부모님한테 말씀드렸더니, 그때서야 그 부모가 궁합을 보러 간다면 이는 사물이 전도된 것입니다.


즉 일의 앞뒤가 거꾸로 되었다는 얘기죠. 사주 선생한테 가서 좋은 덕담이나 듣고 오면 모를까, 궁합을 본 결과 안 좋다고 해서 두 사람의 관계를 끊으라고 말하는 부모들이 아직도 있는데, 정말 웃기는 얘기입니다. 실로 블랙코메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젊은 사람들은 그 부모들이 가진 인생에 대한 시야나 경험이 없으니 걱정이 되겠지만 어디까지나 당사자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위 감이, 그리고 며느리 감이 마음에 안 들면 자신의 자녀와 상의해서 해결해야지, 왜 엉뚱한 사주 선생을 개입시키는 것일까요?


사주 궁합이 맞지 않아도 금술좋은 부부는 많다




사주 궁합을 보러 가면 대표적으로 듣는 말들이 있습니다.


결혼부터 잘못되었다


결혼하면 남편이 바로 죽는다


50점짜리 궁합이다


이혼하게 될 궁합이다


둘 다 죽을 궁합이다(....)


이런 말을 들은 많은 부부들이 투닥거리기도 하고 아이도 낳고 산책도 하며 재미나고 금술 좋게 잘 살아가는 경우는 수도 없이 존재합니다.


반대로 찰떡궁합이다, 천생연분이다 소리를 들었는데 헤어지고 이혼하고 원수가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 합니다.


이 경우 사실 궁합보다는 이름에 이혼 기운(14수리 이산파멸, 화택규 등)이 나오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아주 좋은 며느리 감으로 여기고 있다가 정작 궁합을 보고 와선 얼굴을 싹 바꾸는 어머니들도 있으니 실로 한심한 노릇입니다. 만약 이 경우 사주 선생이 ‘예스'하는 상대를 찾아서 결혼시킨다면 그 사주 선생이 그 결혼의 앞날을 보장한다는 책임 보험까지 들어준다면 몰라도 말입니다. 




최근에는 속 궁합이 중요하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속 궁합이란 말은 위에 이야기했던 궁합 보는 법 중에서 두 사람의 일간(日干)이 아니라 일지(日支)를 맞추어 본다는 뜻으로 쓰던 말입니다. 


명리학에서는 천간의 글자들을 그 사람의 외표(外表)라 하고, 밑에 있는 글자들을 내리(內裏)라 해서 안과 밖을 구분하는데 가령 무자(戊子)일의 남자와 계축(癸丑)일의 여자라면 태어난 날의 지지(地支)에 있는 자와 축의 관계를 본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의 속이니 속 궁합이라 하는 말인데 최근에는 그것을 두 사람의 성적인 이끌림으로 해석하면서 마치 겉 궁합이 좋아도 속 궁합이 나쁘면 부부의 성 관계에 문제가 있는 식으로 얘기를 하면서 사람들을 들뜨게 만드는 경향이 많습니다.


사주와 이름을 보면 그 사람이 성적인 방면에 감각이 있는지, 정력은 강한지, 바람기는 또 어떤지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지간의 이끌림만으로 그 부부의 성적인 만족도를 단정짓기는 어려우며 부부의 성 관계는 사실 정력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적인 문제에 속합니다. 


애정이 좋으면 당연히 성 관계도 좋으며 횟수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최근 속 궁합이란 말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성행위가 난무하고 있는 오늘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결혼해서 잘 살고 못 살고는 상대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본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글을 쓰는 근본 의도입니다. 


결혼이란 대개가 20대 중반부터 후반에 걸쳐 하게 되는데, 이미 그 나이면 그 사람의 인성이나 성향, 가치관, 취미 등등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결혼 상대방을 선택하게 되는 것은 자연히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용모를 중시하는 남자는 주어진 환경에서 나름대로 미모의 여성을 택할 것이고, 돈을 중시한다면 돈에 비중을 둘 것입니다. 


적극적인 성격의 상대를 좋아한다면 적극적인 상대를, 조용한 성격을 좋아한다면 그런 사람을, 이런 식으로 오늘날처럼 개방된 사회에서 자신이 원하는 상대를 만날 확률은 이미 충분합니다. 늦도록 결혼하지 않는 것도 사실은 그 사람의 성격이기도 하며 운의 영향이기도 합니다. 모두가 선택입니다.


여기서 운명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는데, 명리학에서 보는 운명이란 이미 주어져 있는 것과 선택의 조합입니다. 




운명이란 따라서 절대적인 주어진 프로그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처한 환경에서 선택을 해 가는 것, 그것이 운명입니다. 


다만 명리를 알면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를 알아낼 뿐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누구도 선택을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다 제 뜻대로 가는 것이지만, 그 뜻이 어디에 있는 가를 사주 팔자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결혼을 앞둔 부모들의 심정은 한결 같습니다. 자녀가 탈없이 잘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서 혹시나 자기 아들이, 그리고 자기 딸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그러나 자녀라도 다 나름의 개성과 인격이 있기에, 예전처럼 맞선보고 얼마 안 되어 결심을 내리는 것도 아니고 충분히 교제를 하고 이미 궁합까지 다 맞춘 상태에서 다른 이유도 아니고 궁합이 안 좋다는 말 한마디에 둘 사이를 갈라 놓겠다는 발상은 실로 어리석음의 소치라 할 것입니다.




어차피 인생이란 모든 것을 가져다 주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살면서 아쉬운 점을 자녀에게 보충하려는 심리는 인지상정이라 하겠지만 그같은 심리적 투사는 오히려 자녀의 앞 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확률이 더 큽니다. 슬하에서 자랐다고 해서 인생관이 같을 수는 없으니까요.


잘 살고 못 살고는 본인 하기 나름입니다. 거기에 좋은 이름을 지니고 있으면 잘 살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아집니다. 


살다가 이혼하는 것도, 돈을 못 벌어 궁상을 떠는 것도, 자식이 없는 것도 궁합이 나빠서 좋아진다거나 나빠지는 법은 결코 없습니다.


유취상종이란 말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끼리 끼리 모인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모든 결혼은 균형을 이루게 마련인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손해보는 행동을 하지는 않습니다. 가난한 집 아들이 부잣집 딸과 결혼함으로써 생겨나는 갈등 같은 것은 여전히 흔하고 진부한 드라마의 주제로 반복 등장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나름대로 당사자간에 균형이 잡혀 있는 것이며 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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