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 스님] 절망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 개명을 거부하는 이유

성명학|2020. 2. 12. 07:36

 

 

 

친한 동생과 함께 주현 스님에게 놀러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동생이 스님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스님, 제 지인 중에 정말 기구한 삶을 사는 친구가 있습니다. 다단계에 속아 대출을 받아 물건을 왕창 사고 돈만 잔뜩 날렸는가 하면 겨우겨우 공장에 취직해서 일을 하다 한달도 안되 다쳐 치료비만 더 깨지고, 여자친구는 떠나고, 금전적으로는 항상 힘든데다가 건강까지 좋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가 개명을 권장했더니 완강하게 거부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고집도 이런 고집은 처음 봤습니다. 거부하는 이유가 뭘까요?'

 

주현 스님은 이에 대해 명쾌하게 답했습니다.

 

1. 영혼이 생산적인 운명을 거부한다

 

2. 아직 해야할 일이 남았다

 

3. 힘든 운명과 마주한 사람은 더 이상 일어서기 힘들때까지 놔 둬야 한다

 

주현 스님은 먼저 영혼이 바뀌기를 거부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름이 바뀐다는 건 이름의 기가 육체에 깃들고, 육체에 깃든 기가 정신에 깃들고, 정신에 깃든 기는 결국 영혼까지 도달하기 때문에 이를 민감하게 알아채는 법이다.

 

좋은 소리가 좋은 리듬을 만들고, 좋은 리듬이 중복되어 소리가 되어 새로운 운명이 유도되는 것이다.

영혼은 가장 먼저 이를 민감하게 알아채기 때문에, 절때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자 동생이 재차 물었습니다.

 

스님, 그렇다면 왜 본인의 삶이 힘든데도 영혼이 거부한다는 것입니까? 

 

 

 

 

그러자 스님이 말했습니다.

 

"사람은 혼자 사는 존재가 아니다. 가족으로 연결되어 있고 국가로 연결되어 있고 사람이라는 종으로 연결되어 있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끈이 존재하는 것이다.

생태계와 똑같이 생각하면 편하다.

 

그 사람이 좋은 영향이던 나쁜 영향이던 그 한사람의 영향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바뀌게 되어 있다.

그 사람의 운명이 좋아짐으로 인해 하늘이 내린 사람의 운명이 어긋날 수도 있는 것이고, 적게는 가족의 생태계가, 넓게는 국가의 생태계가 바뀌게 되는 것이다.

 

즉 인과율에 묶여 있는 것으로, 불합리해 보이지만 자세히 바라 보면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이 거대한 인과율을 자네 힘으로 바꾸겠다고? 어림없는 소리다"

 

그러자 동생이 울상이 되어 말했습니다.

"스님, 그렇다면 그 지인이 고통을 받아야 할 이유는 뭡니까?"

 

동생의 말은 일리가 있었습니다.

왜 그 지인은 사나운 팔자를 살아야 할까요?

 

하지만 스님은 여기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전생의 빚과 모순을 다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저항할수록 더욱 옥죄어 오게 되고, 옆에서 아무리 하지 말라고 말려도 그 고통을 받기 위해 더욱 깊히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가혹하고 잔인한 운명이라 할지라도, 본인이 치루어야 할 빚을 모두 갚고 나면, 이제 정신을 차리리게 된다.

 

 

참으로 불공평해 보이지만 하늘은 각자에 합당하게 인생의 무게가 내려져 있고, 다가오는 사건들을 완전하게 막을 수는 없다. 자신이 했던 행동, 예를 들면 악행의 죄를 이번 생에 충분히 받고 나야 모순이 고쳐지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운명의 소용돌이에 빠진 사람을 도와줄 생각 하지 말고, 과감하기 손을 때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간 자네 또한 그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지만 장담하는데 자네는 절때로 그 사건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그 사건이 끝나기 전까지는 어떤 말을 해도 그 지인의 귀에 들리지 않으며, 본인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싶어 하게 된다.

사건이 절정에 다다르고 나면, 이제 그 소용돌이가 소멸되고 극한의 감정을 거쳐 원래의 모습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제서야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한탄하게 되는 것이다.

소용돌이가 도는 동안에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절때로 말릴 수가 없다. 

 

괜한 동정심에 어설프게 끼어들지 말고 가만히 지켜 봐야 한다.

정 참견을 하고 싶다면 그 소용돌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 후에 다시 말을 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주현 스님의 말은 "뿌린대로 거두게 되는 것이다" 라는 말이였습니다.

즉, 윤회와 업보에 대한 말이 녹아 있었습니다.

 

납득하기 어렵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 당해야 할 고통이 있고 이 빚을 충분히 갚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좋은 이름으로 개명을 하는 사람은 그 고통을 충분히 갚았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일까요?

 

그때는 주현스님의 말에 압도당해 이 궁금증을 물어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저 수첩을 펴고 열심히 적기 바빴습니다.

 

간간히 소식을 물어보면, 지금도 동생 지인의 끔찍한 인생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동생의 지인의 소용돌이는 언제 끝나게 되는 걸까요?

 

정말로 이번 생에 태어나기 전에, 동생의 지인은 이토록 고통을 당할만한 짓을 했던 것일까요?

운명의 소용돌이가 끝나고 나면, 이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걸까요?

 

고통이 끝나고 나면, 동생이 말했던 것을 떠올려 개명을 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본인에게도 변하기 좋은 기회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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