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학으로 알아보는 부귀와 권력, 신분, 지위의 올바른 사용 방법

역학|2019. 8. 25. 22:42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뭘까요?

 

부귀와 권력입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누리고 싶어하는 부귀와 권력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볼텐데요.

부귀와 권력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유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데에 근본원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본질은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존엄성을 확인 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와 귀, 그리고 권력을 모두 누릴 수 있는 운명은 참으로 드뭅니다. 이 모두가 본질적으로 사회적 가치들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부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부는 일용할 양식을 표현하는 게 아닌 쌓아놓은 것을 말합니다. 자연 속의 동물들은 하루 먹을 양식 이상의 것을 축적하기가 어렵고 축적하는 법도 잘 모릅니다. 인간이 동물과 달리 그토록 탐심이 많은 것은 축적하는 지혜를 터득한 이후부터였습니다.

원시인들에게 있어 축적은 먹을 수 있을 때 많이 먹어두어서 배에 지방이 끼도록 하는 생리적인 저장기술 밖에는 몰랐습니다. 그러나 농업기술이 발달하고 가축을 길들이면서 인간은 축적이라는 개념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회를 만들어내었고, 사회는 권력을 만들었습니다.

 

 

부자는 왜 더 부자가 되고 싶어할까?

‘먹고 살면 되었지 않느냐’는 말도 있지만 돈 많은 사람이 더 벌고자 애쓰는 이유가 뭘까요?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사회란 곳은 언제나 자신보다 더 많이 쌓아놓은 자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탐심은 끝이 없는 것이죠.

부는 내일 소득이 없어도 굶지 않을 수 있는 여유를 뜻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내일은커녕 평생 놀고먹어도 별 지장이 없을 정도로 많은 부를 쌓아놓고도 더 벌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부가 사회적 가치임을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간 사회는 화폐가 생겨나고 화폐의 추상화가 고도로 진전된 오늘날에 와서 부, 재산이라 하면 곧 돈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일본인들의 총 저축이 년간 GDP를 능가한다는 기사를 보고 저는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저축이 GDP를 넘었다면 그 국민 전체가 일년간 아무런 노동을 하지 않고서도 일년간 먹고 살 수 있다는 얘기인데, 인류 역사상 한 집단이 그처럼 엄청난 부을 쌓았던 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역시 거지가 있고 빚에 몰려 자살하는 이도 있는 나라이니 인간 사회가 만들어낸 권력과 분배 구조의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1년씩이나 놀고먹을 수 있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굶주리고 자살하는 이가 있다는 것은 누군가는 2년 아니 3년 이상 놀고먹을 수 있는 부를 쌓아놓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사주명리학적 견지에서 부자가 되려면 본인의 기운이 충실하고 외연적 확장을 도모하는 사람들이 부를 축적합니다. 

그리고 부란 물질적 풍요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자아의 외연적 확장을 통해 부를 쌓은 사람들도 부족한 점을 느낍니다. 쉽게 말해서 살아감에 있어 돈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며, 정신적 풍요도 필요한 법입니다. 이 지점이 바로 귀(貴)가 대두되는 지점입니다.

 

貴 = 귀할 귀, 신분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귀란 정신적 만족을 의미합니다. 성속(聖俗)의 관점에서 부는 속에 해당되며, 귀(貴)란 성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이 양자는 반대되는 경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귀(貴)라 함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위치나 지위를 뜻합니다. 그런 귀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물질적 굶주림에서 벗어나고, 다음으로 사회 속에서 홀대나 멸시받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즉, 그 사람의 개체로서의 존엄성을 인정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 때 귀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돈 없으면 홀대받기 쉬운 것이 오늘의 세상이지만, 그것은 부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부한 자의 부를 일부나마 얻어보려는 마음의 발로일 뿐, 부한 자가 귀한 자는 아닌 것입니다. 

 

돈이 제아무리 많아도 베풀 수 없는 자는 귀한 자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부한 자가 귀해지려면 베풀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은 자신의 재물 중 일부를 베품으로써 귀를 사들이는 방식입니다.

서구의 부자들이 자선 바자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이치입니다.  

자선 바자회를 연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넉넉함을 과시하는 면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베푸는 마음 그 자체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바로 귀인 것입니다. 

 

나눌 줄 모르면 아무리 부해도 귀하지는 않습니다. 

아울러 돈 몇 푼이면 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장삿속에 지나지 않으며 그 또한 귀와는 거리가 한참 멉니다. 나아가서 그런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물신적 풍토라고 비판하는 속됨이요 귀의 반대인 천(賤)한 것입니다.  

귀의 원래 뜻은 비싸다는 것이고, 천의 원래 뜻은 싸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돈 몇 푼으로 살 수 있다는 마음은 그 자체가 사람을 싸게 본다는 것이니 그 마음 자체가 천한 것이 됩니다. 귀한 사람은 남도 귀하게 여기는 법입니다. 나도 이 세상에서 살아갈 이유가 있고 당신도 살아갈 존립 근거가 있다는 것이기에 그것은 공존공생의 정신입니다.  

귀한 사람은 자신에게 봉사한 사람에게 팁을 줄 때, 정말 고마운 마음으로 상대의 봉사를 평가하면서 팁을 건네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천한 사람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팁을 건넵니다. 


사주명리학 상으로 부는 물질적 풍요이고 귀는 종교와 학문, 세상으로부터의 받아들임을 뜻합니다. 

그런데 앞서도 말했듯이 이 두 가지는 서로 상반적인 성격을 지닙니다. 

 

 

공부하는 시절에 연애에 몰두하면, 공부가 어렵고 연애하는 시절에 공부하면 연인을 빼앗기는 법입니다. 

동시에 귀는 성(聖)이고 부는 속(俗)의 세계에 속합니다. 성과 속, 줄여서 성속은 인간 세계의 두 가지 필수 요소이며, 정신과 물질의 영원한 균형을 의미합니다.

그렇기에 옛날부터 종교의 사제나 승려는 학자와 같은 부류로서 귀를 의미합니다. 동아시아 세계에서 과거시험을 통해 귀의 길로 들어섰던 것은 따라서 동아시아 세계만의 전통은 결코 아닙니다. 서구 역시 로마가톨릭적인 전통 속에서 학자와 승려는 언제나 같은 계급이었고 줄여 말하면 귀한 신분이었습니다.

귀한 자의 요건은 자아가 너무 강하지 않아서 교만하지 않고, 학문과 종교를 수용하는 자입니다. 이런 유형에는 학자라든가 종교인, 조직의 틀 안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나 공직자 등이 해당됩니다. 인내력이 강하며 자기 주장이 지나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공직자나 학자, 종교인이 돈을 밝히면 세상의 이치에 맞지 않는 법입니다. 

부란 일용할 양식이 아니어서 부를 탐하지 않는다고 해서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라는 것이 아니며, 다만 몇 년 뒤까지 먹을 것을 쌓아놓고자 하는 마음을 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와 귀는 본질상 양립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권(權)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권력, 권세를 뜻하는 權 입니다.

 

명리학적으로 권력을 쥐는 이는 자아가 강하면서도 사회적 책임도 감내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즉 주관과 소신이 확고한 인물이 권력을 쥘 수 있는 것인데 왜냐면 권력의 본질은 배분 기능에 있기 때문입니다. 

 



제반 사회적 가치들을 공평하게 나눌 줄 아는 자가 그래서 훌륭한 권력자인 것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재상이란 울타리(특정 조직체나 집단)안에서 먹을 것을 나누는 칼을 쥔 자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떡을 나누는 자를 재상이라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권력은 공평하게 나누어야 할 책임이 당연히 수반됩니다.  

쟁취하는 자는 부를 쌓지만, 그것만으로 권력을 지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쌓은 부를 함께 노력한 자들에게 공로에 따라 합리적으로 나눌 수 있을 때 권력의 정당성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실패한 권력자는 이 나눔의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자들입니다. 

권력자는 귀한 자, 즉 공부하고 학식이 있는 자를 불러 측근에 두고 보호해 주면서 동시에 어떻게 하는 것이 자신의 공업을 길게 가져갈 수 있는지를 연구하게 합니다.

 

그 방법적 핵심은 잘 나눔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배분 중에서 가장 중요한 배분이 권력의 배분입니다. 

이를 현대적으로는 권한의 하부 이양이라 하지만, 사실 대단히 어려운 기술이고 전략적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귀한 자는 권력가의 주변에 있기 쉽고 그에 따라 권력도 일부 위임받아 누리게 됩니다. 

이런 자를 권귀라고 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이 권귀의 존재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대통령도 권귀에 속합니다. 

다만 선거라는 민주적 투쟁 방법을 통해 한시적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때문에 일반 공직자와는 다른 법이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부와 귀, 권력까지 모조리 영속적으로 누리고자 기도할 때는 가장 지독한 냄새가 납니다.   

서구인들은 민주주의의 본산지답게 공직을 public service(공공 서비스) 라고 하지만, 왕조나 황제 치하에서 살던 동아시아 지역은 여전히 공직이 봉사보다는 사회적 획득물로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권귀의 핵심 기능을 공평한 나눔의 자리로서 보느냐, 투쟁의 획득물로 인식하느냐, 바로 이 점이 좋은 사회냐 나쁜 사회냐를 결정짓는 기준인 것입니다.

그리고 부 중에 가장 좋은 부가 자부(自富)이며, 귀 중에 가장 좋은 것이 자귀(自貴)입니다. 자부란 일용할 양식만으로도 부자일 수 있는 마음이며, 또 자귀란 스스로를 귀하게 여겨 자신을 소중히 가꾸며 남도 귀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마찬가지로 권력 중에 가장 좋은 것이 자권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누구에게 의탁하지 않고 독립독보할 수 있는 주관적 정신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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