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받아 들이는 올바른 방법에 대해서

기타|2020. 4. 7. 08:21

 

 

 

우리는 매 순간 탄생과 죽음을 목격하고, 지구에 태어난 이상 죽음이라는 것을 반드시 맞이하게 됩니다.

탄생이 하늘이 하는 일이라면 죽음 또한 하늘이 하는 일입니다.

 

탄생과 죽음이라는 것이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 같아도 하늘이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신이 개입되는 것이 탄생과 죽음입니다.

 

주변에 죽은 사람이 생겼을 때나 어떤 사건 사고에 의해 사람이 죽게 되었을 때, 우리는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삶과 죽음을 깨닫고 죽은 자를 애도합니다.

 

산 자의 역할은 죽은 자의 몫까지 열심히 살아 주는 것입니다.

 

가족이나 친척, 혹은 지인이 죽었을 때 감정적으로 가장 원통해 하고 오버하는 사람이 가장 큰 '죄인'입니다.

자식이 죽으면 부모가 가장 큰 죄인입니다.

 

감정적으로 죽음을 받아 들인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죽음 앞에 감정적이 되면 이성은 사라지고 본능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사리 분별이 되지 않고 남 탓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괴롭고 힘들게 만듭니다.

 

 

이것이 죽은 사람을 위한 진정한 애도의 자세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저승에 갈 때 한명씩 가는게 아닙니다.

함께 저승에 가는 경우가 많은데 장례식장에서도 사람이 없을 땐 아예 없다가 갑자기 장례식장이 꽉 찰 정도로 몰려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정 사건 사고로 죽은 사람의 숫자가 많을 때, 죽은 부모를 비롯한 지인들의 감정체가 강하게 발동되면서 주변에 감정의 사념체를 전달합니다.

 

 

 

 

이 에너지가 회오리처럼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하면 인간은 광기에 사로잡힙니다.

광기에 사로잡히면 남은 안 보이고 특정 감정체에 의해 움직이게 되며, 그 감정체가 주변을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이 때 광기 에너지가 돌기 시작합니다.

광귀는 귀(鬼)의 움직임입니다.

 

 

죽음이 넋이 나갈 정도로 슬프게 애도하고 감정적으로 대하는 것이라고 착각하는데, 죽은 자는 남아 있는 자가 행복하게 잘 살길 바라는 마음이며 산 사람은 씩씩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주면 됩니다.

 

죽은 자에게 애도를 표할 때 슬픔의 에너지에 휩싸여 감정적이길 기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감정적이지 않다고 하여 애도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어쩌면 감정적인 사람보다 더 애도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둬야 합니다.

 

죽은 자는 산 자가 울고불고 슬퍼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죽은 자가 울고불고 슬퍼하길 바란다면 그것은 귀 노름입니다.

 

산 자는 죽은 자를 잘 떠나 보내줘야 하고 죽은 자는 이승에 미련 없이 저승으로 떠나 줘야 합니다.

죽음에 대함에 있어서 감정적이지 않고 최대한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상대를 애도하는 것이 진정으로 죽은 자를 위한 애도가 됩니다.

 

감정에 휩싸여 광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그 죽음에 가장 큰 죄인입니다.

마음의 죄가 깊기 때문에 가장 크게 통곡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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