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학] 이름 불용한자 불용문자의 고찰 5편 불용문자의 역사

성명학/불용한자|2019. 3. 11.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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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명(敬名)사상


옛사람들은 이름을 매우 중히 여겨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 경명사상이 있었다. 다른 사람을 부를 때 관직이나 호, 자를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 사람을 멸시하는 것이었다. 흔히 사용하는 글자로 이름을 지으면 남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게 되어 경명사상에 어긋나기 때문에 이를 피하였다.


이름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례는『예기(禮記)』에도 많이 등장한다. 이런 기록들을 통해 옛사람들이 얼마나 이름을 정중하게 여겼는지 잘 알 수있다.


“임금은 장관 이상 신하[卿老]와 천자를 모시던 후궁[世婦]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며, 대부는 부친 생존시 함께했던 노신(老臣)과 처가 친정에서 데러온 일가 여자들[姪娣]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며, 선비는 가신(家臣)의 장(長)과 아들이 있는 첩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군자는 부친을 이미 여의면 이름을 고치지 않으며, 부친을 이미 여읜 뒤에 갑자기 존귀하게 되어도 아버지를 위해 시호를 짓지 않는다.”


“제후는 살아서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제후는 땅을 잃으면 이름을 말하고 동성(同姓 가문)을 멸망시키면 이름을 말한다.”​


불용문자의 역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예기』에는 “나라와 일월, 몸에 감추어진 흠, 산천의 이름으로 이름을 짓지 않는다.”고 하였다.




『춘추좌전(春秋左傳)』에도 “나라 이름과 산천 이름, 몸에 감추어진 흠, 축성의 이름, 기물(器物)이나 폐백(幣帛)과 같이 큰 사물의 이름으로 이름을 짓지 않는다.”고 하였다. 


당초 죽은 사람의 이름을 휘(諱)라고 하였는데, 나아가서 살아있지만 존경받는 사람의 이름까지 경명사상에 의하여 휘라고 확대하여 직접 부르거나 사용하지 않고 피하는 것을 피휘(避諱)라고 한다.


『춘추좌전』에 ‘주나라 사람들의 피휘’가 나타나므로6 중국은 주나라 당시부터 피휘법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통일신라 성덕왕(聖德王)(702-737)이 당(唐) 현종(玄宗)(712-756)의 이름을 피휘하여 개명’하였으므로 우리나라도 그 당시 이미 피휘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피휘법은 고려시대에 일반화되고 조선시대는 우리나라의 예법(禮法)으로 정착하였다. 따라서 성명의 이름자로 흔히 사용되는 일월, 산천, 축성, 기물, 폐백 등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 것과 국왕과 성현, 조상, 부모까지 확대된 피휘법을 보면 불용문자의 근거는 경명사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의(字義)




성명학 조사 문헌 대부분은 불용문자의 근거를 글자의 뚯인 자의에서 찾고 있다. 자의는 심리적 영향으로 당사자 또는 상대방의 심리에 반응하여 자의에 따라 길흉(吉凶)을 미친다고 설명한 이금정·한금사 등과 같이 명시적으로 자의를 불용문자 근거로 밝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의미와 유형 등에서 불용문자 근거가 자의임을 우회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 언어는 말이 씨가 되어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언령사상(言靈思想)이 있고, 한자는 성명학의 전제인 영동력(靈動力)이 존재한다. 


표의문자(表意文字)인 한자 이름자는 수없이 사용되면서 소리와 뜻이 나쁘면 당사자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치므로 이름자에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용문자의 근거를 자의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름자는 자의(字義) 그대로 순기능(順機能)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이 너무 원대하고 거창한 글자는 오히려 글자의 뜻과는 반대로 역기능(逆機能)을 할 수도 있다.


『주역(周易)』에서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한다(物極必反).”고 한 것처럼 자의가 아무리 좋아도 지나치면 오히려 나쁜 영향을 불러와서 불용문자가 된다는 것이다. 


소리나 뜻이 좋은 문자의 경우에도 그 역기능에 의해서 이름자에 사용하면 나쁜 영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자의도 불용문자의 근거가 된다.


측자파자(測字破字)




신유승은 불용문자를 이름에 쓰면 안 되는 이유나 원리를 밝힌 최초의 문헌이『격암유록(格菴遺錄)』이라고 주장하면서 측자파자를 그 근거로 제시하였다.


『격암유록』은 위서(僞書) 논란이 있으므로1314 조선 중기에 불용문자가 존재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불용문자의 근거를 측자파자로 볼 수 있다. 


김기승 역시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의 혼란 속에서 측자파자(測字破字)로 점(占)을 치면서 불용문자가 파생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대부분의 성명학 문헌에서 예로 든 순(順), 임(林), 호(好)를 측자파자하면 川+頁, 木+木, 女+子로 양쪽으로 나뉘어져 부부나 가족의 이별을 암시한다. 


측자파자로 갈라지는 문자를 이름자에 사용하면 나쁜 영향이 있으므로 불용문자의 근거를 측자파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출처 : 모자음 오행성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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