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학] 이름의 기원과 역사

성명학|2019. 4. 1. 17:25

이름의 역사


보통 이름이라 하면 성(姓) 아래에 붙여 다른 사람과 구별하여 부르는 말[名]이지만 성과 이름을 모두 합쳐 이름, 즉 성명(姓名)이라고도 한다. 


姓은 女와 生을 합친 회의(會意)글자로서 여자가 자식을 낳아 공동체를 형성하고 혈족을 계승하던 모계사회의 관념이 반영되었다.


저녁 때 어두워서 서로 잘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름을 불러 상대를 확인하던 풍습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현대 문자학의 발달로 ‘名’에 대한 해석이 요즘 달라졌는데, 名은 축문[口] 위에 제수 고기[夕]가 올려져 있는 모양으로 아이가 자라 씨족의 일원이 되었음을 조상께 제사지내며 정식으로 이름을 지어 보고하는 행위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해석한다. 


이름의 의의


우리말의 ‘이름’은 “무엇이라고 말하다”는 의미의 ‘이르다’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이 같은 성명과 이름의 기원에서 이름이 갖는 기본적 의미를 알 수 있다.


노자(老子)의『도덕경(道德經)』에서 “이름이 없으면 천지의 처음이고, 이름이 있으면 만물의 어머니(로서 이후 모든 존재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라는 표현과『구약성서』<창세기>의 다음 내용은 존재의 본질을 통찰하고 인식해서 존재에 어울리는 의미를 부여하는 일련의 상징적 행위라는 맥락에서 이름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 내셨다. (…) 하느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빛을 낮이라, 어둠을 밤이라 부르셨다. (…) 야훼 하느님께서는 (…) 들짐승과 공중의 새를 하나하나 진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아담에게 데려다 주시고는 그가 무슨 이름을 붙이는가 보고 계셨다. 아담이 동물 하나하나에 붙여 준 것이 그대로 그 동물의 이름이 되었다.




이름은 사물의 본질을 표시하고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은 곧 그 사물이 지니고 있는 내면의 특성까지도 간파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어떤 사물에 이름을 부여한다는 것은 그 사물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서 사물에 대한 지배권을 의미하며 창조의 한 과정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이름이 갖는 일반적인 역할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히고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聖經)에서의 이름은 그런 일반적인 의미를 훨씬 뛰어넘어 그 이름을 지니고 있는 사람의 성격과 특성, 그리고 운명까지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사람에게 이름이 부여되는 것은 그 이름이 지니고 있는 의미가 곧 본인의 본성과 운명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이해하였다. 


이런 인식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이름을 짓는데 신중하며, 자녀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을 이름에 담아내고, 이름이 좋지 않다고 생각되면 개명을 원하는 경우도 많다.


일단 한번 지어지면 수없이 불러지는 이름은 사람이 입고 있는 (좀처럼 벗기 어려운) 외투와 같고, 그 사람 외양의 일부가 되어서 본명인(本名人)의 특성과 정체성을 밖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사람들이란 지구상의 이름을 다 합친 것보다도 자신들의 이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당사자에게는 자신의 이름이 세상 그 어떤 말보다도 가장 듣기 좋고 가장 중요한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이름을 영원히 명예롭게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이다.




≪탈무드≫에 나오는 세 가지 이름, 즉 “인간에게는 이름 셋이 있다. 태어났을 때 부모가 지어준 이름, 우정에서 우러나 친구들이 부르는 이름, 생애가 끝났을 때 얻게 되는 명성이다.”라는 언술은 이름이 갖는 의미를 가장 함축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첫 번째 이름은 본명(本名)·성명(姓名)·아명(兒名)이며, 두 번째 이름은 별명(別名)·애칭(愛稱)이며, 세 번째 이름은 명성(名聲)·명망(名望)·명예(名譽)이다. 


별명·명성의 다른 두 이름과 달리 첫 번째 이름인 본명·성명·아명은 예부터 기복신앙적 의미로 채색되는 경우가 많았다.


별명·애칭의 대표적 예는 신라 자비왕(재위 458~479) 때 거문고의 명인 백결선생(百結先生, ?~?)이다.『삼국사기』열전 백결선생전에 따르면 백결선생은 “(이력을 알 수는 없지만) 경주 낭산(狼山) 기슭에 살았는데 집이 매우 가난하여 해진 옷을 백 군데나 기워서[衣百結] 마치 메추라기를 달아 맨 것과 같았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동쪽 마을의 백결선생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본명은 알 수 없고 단지 백결선생이라는 별칭만 전해진다. 사람의 외모나 성격 따위의 특징을 바탕으로 남들이 지어 부르는 이름인 별명이나 본래의 이름 외에 친근하고 다정하게 부를 때 쓰는 이름인 애칭은 기복신앙과 무관하다.




사람이 현세(現世)에서 행복을 희구(希求)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임과 동시에 최상의 목표이다. 철학과 종교에서는 마음 수양과 도덕적 성숙이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지극히 세속적인 것들에서 행복을 느낀다. 


한국인의 전통생활 곳곳에서 보이는 길상 문자인 ‘수(壽)·부(富)·귀(貴)·다남자(多男子)’란 것도 결국 세속적인 복이다. 


오래전부터 이름은 사람과 운명 간에 공명(共鳴)작용을 한다고 인식되었다. 그래서 이름을 가려 잘 지어줌으로써 본명인의 장래 운로(運路)를 좋게 열고자 했다. 


이름은 타인과 자신을 구별하기 위해 부르는 말[언어부호]이라는 본래 의미 외에 현세구복(現世求福)을 위한 개운(開運)행위의 신앙적 도구로도 인식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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