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하면 정말 지옥에 떨어질까? 사후세계와 영혼

윤회|2019. 11. 27. 20:41

 

 

 

설리에 이어 구하라까지 자살을 했습니다.

설리와 구하라는 절친이였는데, 그래서 더 안타깝습니다.

 

먼저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사실 말입니다.

 

영원한 무를 꿈꾸며 스스로 죽음을 맞이해 봐야 그런건 없을 뿐더러, 이번 생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다음 생으로 고스란히 넘겨져, 그 문제를 극복할 때까지 자신의 과제로 끌어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불교와 힌두교는 물론이고, 초기 기독교에서도 윤회와 환생 이야기는 나옵니다.

 

흔히 자살하면 구천을 헤매거나 지옥에 떨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정말일까요?

 

혹시 노동력 상실을 두려워 한 권력자들이 꾸며낸 말은 아닐까요?

 

 

이는 사실 다소 과장된 말입니다.

하지만 어느정도 패널티가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먼저 자살이란 것은 상당히 나쁜 업에 속하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면 현재보다 월등하게 형편없는 곳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소말리아의 뒷골목 같은 곳에서 말이죠.

 

자살 후 다시 시작할 곳

 

이런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지 않은가?

 

또한 남은 자살 유가족들의 고통은 이루 말로 표현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살 유가족의 우울증 지수와 자살 충동 지수가 일반인의 300배 수준이 된다고 합니다.

 

한 명의 자살이, 최소한 주변의 5명에게 자살 충동을 심어준다는 세계 보건기구의 연구 결과도 존재합니다.

 

또한, 사후를 이야기할 때 꼭 알아야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스웨덴의 스베덴보리(1688-1772년)입니다.

그는 루터교 고위 성직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성직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부모의 희망과 다르게 자연과학자로서 많은 연구를 했고 저술을 남겼습니다.

 

그러던 중 57세 때 빛을 만나는 신비체험을 한 뒤 세상을 떠날 때까지 27년간 체외이탈의 방법으로 수없이 영혼의 세계를 방문하여 보고 들은 자신의 체험을 수십 권의 책으로 남겼습니다.

 

 

 

 

내가 바로! 에마뉴엘 스베덴보리다! 

 

이 듣도보도 못한 양반이 누구냐구요?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 문호 괴테,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였던 칼 구스타브 융, 영국의 역사학자 토마스 카알라일, 미국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 프랑스의 소설가 발자크까지 이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한 칭송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우리는 육신이 죽은 후 소멸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파동으로 진동하는 에너지체로 존재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슷한 파동을 지닌 영혼들끼리 서로 만나 모여 있게 됩니다.
누구든 죽으면 본인이 생각하는 대로 풍경이 그 즉시 눈앞에 펼쳐지며, 죽기 직전의 정신적, 정서적 상태에 일정 기간 머물게 됩니다.

 

 

 

그래서 자살한 영혼은 자살할 때의 극심한 마음의 고통에 한동안 갇혀 있게 되어서, 그와 다른 주파수를 가진 영혼들과는 만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결국에는 고차원 영들의 도움을 받아들여 지치고 상한 영혼이 치유되고 고립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는데, 그러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고 합니다.

 

자, 그럼 현재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 블로그에서도 잘 나와 있습니다.

바로 좋은 이름을 갖추는 것입니다.

 

(기승전 성명학)

 

좋은 이름이 중요한 이유는, 나의 품격은 물론 영혼의 품격마저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영혼을 지니면 그만큼 남에게 베풀어 줄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기 쉬우며, 그만큼 좋은 선업을 많이 쌓을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 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살다 가는 것은 결코 공허한 것이 아닌, 다음 생에도 행복하게 살기 위한 씨앗을 뿌리는 것과 마찬가지의 행동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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